![]() * 빨래·1 - 박찬호 동생이 빨고 간 빨래, 어둠 속에서도 환하다 내일이면 떠나 3 년은 못 볼 녀석, 오늘 빨래를 한다 자기 옷과 내가 벗어놓은 셔츠, 양말까지 깨끗이 빨아 널며 말이 없던 녀석 빨래들 묵은 얼룩이 털린 채 먼 불빛을 저녁으로 서성이게 했다 슬픔은 사소한 침묵에도 촘촘해지고 보내야 하는 것은 언제나 말끔히 자신을 털릴 때 세월 앞에 투명해진다 동생이 떠나고 푸른 하늘이 걸어놓은 아침 빨래 위에 희게 널린다 그렁하던 뒷모습이 하지 못한 말들이 서먹한 비눗내 대신 속살거린다 무엇 때문에 남에게 털린 늙은 얼룩, 푸르게 사무치는가 마침내 투명한 햇살의 形式 아침으로 치유되는 것인가, * 빨래·3 - 박찬호 눈(雪) 투명한 시늉만이 세상에 널린다 온 살을 밀어낸 나무들 눈 덮인 아침을 일렬로 걸어갈 때 가지 끝에 바람을 진열하던 은밀한 오후도 서둘러 제 내력을 감추고 아직 결론에 이르지 못한 노인들의 童話도 하얗게 알몸으로 털린다 살아온 만큼 가벼워졌으나 한사코 제 몸의 무게를 읽지 못해 흔들리는 삶들도, 눈 다시 내리고 끝끝내 초록을 지고 섰던 몇 그루 나무처럼 남루한 체격을 벗으면 희미해진다 경쾌한 사위들로 자욱해진다 가까운 공터에선 아이들의 소리들이 표백된 시간에 지워지고 있다 마를수록 선명해지는, * 완강한 오후 - 박찬호 멀리서 돌아온 바람이 텅 빈 놀이터에서 무게도 없이 그네를 밀고 있다 그네가 흔들릴 때마다 노인의 시선은 벤취 위에 무료한 그늘을 만들고 지난 밤 충분히 게을러진 햇살들, 고른 치열을 희뜩이며 아이들의 종아리를 어루만진다 한 번쯤 무엇이라 부른 것들은 모두 스스로 표정을 풀어 사라졌고 사물의 이름으로야 견고해지는 풍경들, 아직 제 몸을 벗지 못한 소리들만 완강하다, 오후 구름이 분산하는 서쪽 하늘 희미한 5월의 결론들이 낱장으로 떨어진다 불현듯 사무치던 욕망 같은 것들, * 별과 나무를 핑계한 글 - 박찬호 말하자면 그랬다 숲으로 가던 길엔 상처 난 공기들만 배회하고 있어 늦봄에 흘린 쓸쓸한 사랑의 원형 무늬 지워져 있다는 게, 물 비린 바람이 노을을 찢어 무허가 주점의 술 취한 별을 불러들인다는 게, 온종일 고요의 시간에 머물다 몸 뉘일 그리움의 숙소를 찾는 터무니없이 별빛 환한 저녁이 시시했다 별빛 흔들리면 온순한 공기들 자주 웅성거렸고 어깨에 쌓인 불빛을 털어도 새벽이 먼 혼자인 나무, 다시 바람이기로 했다 설움 없는 사람들 가지에 얹고 간 익명의 눈빛으로 초록을 풀어 하루치 상념을 비워 저문 길 조용히 쓸어주지만, * 가계부를 쓰는 어머니 - 박찬호 흘러내리는 돋보기로 더 희미해진 콩나물 값을 적는 어머니를 보노라면 당신의 아들로 살아온 숱한 세월이 눈물겹다 몇 년째 낙서들로 빼곡한 이달의 수입, 빈 칸이 안쓰러운 어머니 흘러간 노래 가사를 적었다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는 겨울날 기나긴 밤 어머님 하고 ……" * 줄 쳐진 횡선들이 진즉에 들켜버린 어눌한 삶의 내력인 듯 오늘의 수입난에 성근 겨울밤이 쌓였다 숫자로 매겨지는 삶의 무게 대신 흐드러진 뽕짝을 등에 인 체 내일도 당신의 아들로 살아갈 이미 장년인 아들의 꿈을 어머니, 흑백으로만 그렸다 아직도 이 땅에 갚아야 할 빚이 많단다, 빨간 펜으로 그려지는 내 삶의 가계부를 대신 쓰는 어머니 오늘의 여백으로 남는 금주의 특기사항에 70년대식 대차대조표로 하루를 결산하는 당신의 아들이 산다 내 살아가는 날의 사무친 증거인 어머니, 당신이 산다. 내일의 날씨: 곳에 따라 비 내린 후 차차 맑음 * 흘러간 노래 '부모'의 가사 * 손톱의 꿈 - 박찬호 언제부턴가, 왼손의 손톱이 빨리 자랐다 오른 손이 더 혹사를 하는 것이 못 미더워 잡초 같은 손톱으로 시간의 더께를 증명한다 각질의 투명함 안에 새로운 화해를 재배하여 어눌한 그리움을 몰래 감추며 자란다 낮술 한 잔으로 구겨진 가슴에 외로움의 원형고리를 끼울 때에도 왼손의 신경은 망각의 안일함을 비료로 모르는 陰謀처럼 손톱의 각질만 키우고 있다 왼손이 참아온 것은 쥔 손을 펴야 비로소 보이는 일상의 때, 시간들이 편안히 토해놓은 수줍은 신음 하나와 때때로 빈 가슴으로 추락하는 절반의 이름이었다 쓰디 쓴 일상의 유혹들 손금에 낀 때처럼 부서질 때, 借名의 시절을 깎는다 쌓여진 슬픔의 잔해 위에 서둘러 배양한 화해도 토막토막 말을 끊어버리고, 다시 손톱이 키우는 하루치 꿈에 가장 어두운 것만이 어둠 속에서도 빛난다는 생소한 희망, 한사코 믿기로 한다 * 병력기(病曆記) - 박찬호 겨울 나무나 그리던 불임의 밤 적막한 세상의 문법들 刺傷의 흉터처럼 감추고 잊기로 했는데, 그 나무 그리워하던 시간들 보다 더 오랜 망각의 시간만 射精하고 있었는데, 그 세월들 담홍빛 노을로 각혈하는 봄날 무슨 간절함으로 겨울 안에 머물렀던가 내 모든 약속의 이름을 새겼던 나무들 이별을 예약한 사람들의 안부로 간단히 베어지고 전송의 의식도 없이 눈물 없는 그대 보냈을 때, 헐벗은 뒤꿈치의 굳은 살로 곤두서던 통증은 나뭇잎 땅으로 투신한 가로수 가지에서 무심히 돋아났다 빈 가지에 세상의 아픈 소리들 바람처럼 갈마들면 잊고 있었으므로 생소해진 빈혈의 이름들 파르릇 소름으로 돋았고 흙으로 화농되지 못한 그 거리의 낙엽들 마른 햇살 서둘러 떠난 사람의 빈터에 태워져 인적 없는 지상의 하늘로 흩어졌다 뿌리보다 깊은 곳에서 겨울잠 깬 그리움의 철자들로 허기진 봄이면, 저음의 테너로 빛나는 창 밖의 슬픔과 창백한 세월의 문법으로 소란한 세상의 고통에 조율 안 된 半音조 화해의 노래 부르던 시절 * 문상 - 박찬호 오래 쌓여온 고요들은 겨울이면 통증도 없이 내력을 쌓는다 다시 누군가를 보내는 한 생애의 저녁 서둘러 떠나는 슬하의 구름만이 두런두런 밤을 나누는 지붕 위, 창백한 별빛이 남겨진 이들의 슬픔을 따라 어둠 속으로 흩어진다 흐린 하늘을 짊어진 길이 허리를 접는 골목 어디쯤 사물의 내부로 저물어 가는 한 그루 감나무의 사무친 시위, 등 뒤에서 잘려진 길이 꿈틀거린다 어둠 속으로 천천히 저무는 이 길을 나는 걸어간다 문득 다시 돌아가지 못할 완강한 세월을 지나온 것도 같았다 * 목련 이후 - 박찬호 턱없이 처녀들의 紋章이 떨어진다 고개를 모로 꺾고 낯모를 설움 함부로 익혀 제 살 붉게 한다 떨어지기 위해 가지 끝에 젖는 살 서명없이 산화된 봄의 내력도 사소한 소문만으로 빛살에 철거된다 * 길 - 박찬호 외등이 걸린다 어둠의 경계를 넘어서자 오래 기다린 길들이 흔들린다 길 하나가 흔들리자 불빛들 자욱하게 풀어진다 초록으로 불려야 늘씬한 계절의 하루이던 풀들은 말라 있다 서러웠던지 외로웠던지 강마른 내 하늘에도 그리움은 거덜나 바람도 목울대를 죽이고 가볍게 돌아서던 발걸음 가벼움은 삶의 엷은 아픔이라고 어둠에 몸을 적신 사람들은 말이 헤프다 술잔을 털어 적신 입술에서 내 이름이 마른다, 길 위에서 누가 꽃을 부르듯 나를 불러온 적 있던가 쓸쓸했으나 아득한 흉터에 사무쳐 살 바르는 네가 남았다 계절 한 잎 부리에 물고 떼 지어 새들은 떠나간다, 깊을수록 속을 감추는 굽은 길 위 멀리서 돌아온 흐린 풍경이 밥상처럼 차려졌다 * 꽃밭에서 - 박찬호 이름하여 부를 것 없는 빈 땅에도 하루종일 빛살은 널린다 겨울이 흘린 한 잎 초록, 빈 손으로 웅켜쥐면 가난히 다가서던 바랜 살내음, 지금은 꽃의 이름을 잊는 계절 무작정 누가 그리웠다 속눈썹 깜짝여 한 구름 흘려보낸 서쪽 하늘, 빈 들이 환했다 돌아보면, * 대성리 이후 - 박찬호 여름인가, 찾은 강 밤새 벼랑처럼 울린 빗소리에 소스라친 풀잎들 살벌한 얼굴로 깊어진 허리를 펴고 있더군. 동행없는 방문을 외면하는 그대 목줄기에 파슬파슬 널리던 童貞의 물살무늬 묵은 계절의 배경처럼 흘러 그대 눈빛에 저물던 行人의 강 지난 겨울쯤엔 바람 불고 외로워졌을까 통속한 예감도 없이 비 내리고 낡은 아픔의 상처 새 살로 돋아 도시의 그리운 음성 간단한 안부로 들릴 때 무심한 시선으로 서성이던 쓸쓸한 얼굴 만나면 서늘한 시절의 기다림은 될 수 없을까 흐린 하늘빛에윤穗 몸 추억을 덜어낸 바람에 흔들렸다 낯익은 발자국, 무게 없는 시위 * play misty for me - 박찬호 희미하게, 다만 희미하게 다가서는 체위들의 긴밀한 소란스러움, 이 포오즈는 낯이 익다 태능의 밤을 넘어가 브루스를 추던 그대의 입김 같은, 흐림 그리고 흔적 없던 흐르지 않고 분산하는 어둠의 처연함, 나, 이제 수첩에 기록한다 안개 짙을수록 갈 길 지워져 밤으로 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저무는 거리를 착색되지 못한 불빛으로 떠다녔다 가볍게 살랑이는 기류의 불안함, 종점에 닿은 길들이 풀어낸 거친 숨결들 고음으로 층게를 오르면, 그대 아니라 손짓해도 나는 안 보이는 안개의 갓길을 가고 싶었다 문득 새들의 날개짓 소리 멀어지고 아직도 절망을 교미하는 꽃들의 불륜이 수상했다 안개의 웃깃이 풀어지는 해안에서 서둘러 떠나는 계절의 모습 붉었던가, 푸르렀던가 * 감기 - 박찬호 선잠 깬 내 목소리 발정 난 봄빛처럼 문득 쓸쓸할 때 겨우내 배양했던 그리움의 성긴 닿소리들 눅눅한 발성의 콧물 되어 흐른다 오래 앓은 권태의 냄새, 적막한 감기는 제법 친근했던 삶의 몸짓을 주눅케 하는 부양하지 않은 생소한 환멸로도 찾아들지만 그러나, 감기가 키우는 것은 부산한 세상에서 방출 돼 허기의 겨울 밤을 노숙하던 묵은 사랑이 早産한 불회귀성의 아픔들이다 불임의 겨울 잠에 가려졌던 살비듬 같은 묵은 감기와 화해하는 세상 언저리, 수신란을 공백으로 발송했던 삶의 내력은 반송 돼 내 나이보다 먼저 죽어간 자들의 이름으로 통속한 희망의 증거인 듯 遺失物係 선반에 분류표도 없이 매달려 있고 익명의 시절을 지나며 낯설게 마주치는 3월, 낯 모르는 이들이 전하는 성급한 계절 소식에도 아직도 벗어내지 못한 내복의 얼룩처럼 초췌한 사랑의 震動 같은…… * 숲 - 박찬호 여름 숲에서 나는 이름도 없이 부유하는 공기처럼 가벼워졌다. 나무들은 살아온 정적 만큼 멀어진 거리에서 저들의 표정으로만 흔들리며 가지 끝을 선회하는 낡은 이름의 체온을 지웠다. 아직 홀몸인 바람이 먼 나무들의 가지 사이를 무명으로 퇴화된 오후의 햇살을 실어 왕래했다. 오래 전에 이 땅을 지나간 그리움들은 죽어, 나뭇가 어디에 풍화되어 사라지고 사람의 관계로 살아온 모든 세월, 오늘은 탄식으로 마른 풀밭에 누웠다. 이미 사라진 모든 것들을 자주 뒤돌아보는 계절 안에 미완인 꽃들의 기억이 속죄의 성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하늘가, 바람에 풀어져 바다쪽으로 날개짓하는 새가 마지막 단독 비행에 나설 때, 숲은 나를 모른다 고개를 돌린다. 가까운 길에선 들꽃 내음 같은 계절이 서툰 걸음으로 지나갔다. * 포도 나무 - 박찬호 대학로에서 포도나무를 보았다 십 년만에 돌아온 여자는 말을 줄인 대신 눈사위가 붉다 시늉, 산다는 소리에 과장되던 체위들 고개를 모로 꺾고 풍경에 멎은 여자의 고요 너머 지나온 시절 문득 사라지고 눈에 가득 차던 주점 벽에 표구처럼 걸린 포도나무, 비틀리고 비틀린 체구로야 이름으로 남는 저 나무 세월은 무슨 간절함으로 비틀린 체구마저 한사코 가두는 것일까, 어쩌면 우리는, 한 시절 애닳던 침묵의 깊이를 소리 죽인 울음으로 들어주는 것이다 벽 속에 갇힌 나무 앞에 저녁빛 내린다 생각보다 먼저 발목까지만 젖는 몸, * 변명 - 박찬호 비 오는 봄이지 그 봄에 누가 나를 소문낸다 꽃이 제 살 열기 기다릴까, 빗방울 단 머리카락 함부로 털며 시절을 지나친 낡은 몸, 여린 꽃몸에 그늘을 편다 그리움 하나를 보내니 하얗게 제 몸을 감추는 꽃잎들 * 생일 - 박찬호 어머니 나가신 후 밥상 위의 미역국 영문모르고 먹었네 공복의 아침에 훌훌 부어넣다 나팔꽃 한 잎으로 당신의 생신인줄 알았네 눈 사위가 시린 맑은 하루에도 한사코 젖는 당신의 빈 방 내 나이에 미역국 먹으면 오래 살까 싫다시던 당신의 희미한 웃음, 사무쳐 자꾸 기웃거리네 * 여름 - 박찬호 며칠쯤 창 열지 않아도 그리움 화농하지 않는 계절 가시 하나만으로도 여름을 살아낸 꽃잎, 떨어져 바람에 흔들렸다 흔들리는 만큼 세상에 노출되는 붉은 속살들 초록으로 부서지는 빗물에 내가 읽지 못한 슬픔으로 글썽였다 남겨진 줄기들, 無名의 몸짓으로 시위를 한다 가까운 곳에선 다 닳은 오후가 살림 걷는 여름으로 소란스럽다 * 門 - 박찬호 내게 오기 위해 뿌리 잘린 꽃들은 적요롭다 추억과 내통하는 향기를 벗기다 공기의 하중에 건조되는 이름도, 언제나 말하지 못했던 것은 사라진 뿌리들 세상의 고요를 건너던 감춰진 門이었다는 생각 줄기 끝에 매달린 당신의 인사가 유창하다 잎사귀에 몸 숙이고 흐린 아침을 지날 때 내가 만나는 우연한 波動, 슬며시 두드리면 오래 닫혀 있어도 더 푸른 꽃잎의 落下, * 구두에 관한 회고 - 박찬호 오래 벗어두던 구두를 신어본다 어두운 골목을 서성일 때마다 가등의 불빛에 숙성되던 그리움의 뒷 태인 듯 잠시 희망으로 빛났던 광택은 가라앉고 가벼운 체구의 주름으로 남은 구두, 이제는 없어진 뒤꿈치 굳은살처럼 낯선 체감으로 발을 감싼다 구두를 신고 다닐 때는 몰랐다 희망이 사라진 자리에 남는 것은 흘린 시절의 기억이 아니라 발이 구두에 적응하던 고통의 기억 뿐, 그 자욱 위로 마음이 걸었으나 자주 길 잃었던 희망들 시큼한 먼지로 덮여 세월을 증거한다는 것을, 머리를 산발한 채 거리를 지나는 세월 앞에서 구두, 홀로 익힌 침묵으로 빛을 줄이고 한 번쯤 스쳐온 고통에 기대어, 묵은 內歷에 함부로 발기하지 않는다 살아온 내 삶의 경사인 듯 한 쪽으로 기울어야 간직한 무게를 버리고 사물로 귀화하는 한 켤레 구두 * 봄비 - 박찬호 비 나리는 청량사 입구 빗줄기에 제 살이 찢겨도 다시 젖어야 환해지는 감나무 앞, 저물도록 선 아이가 있다 아이에게도 이 생에 기다려야 할 약속이 있다는 것일까, 흐린 하늘을 쳐다보는 아이는 눈사위가 깊다 아이가 올려놓은 생각에 가지들이 휘어진다 지나던 비구니 끌고 오던 길을 놓고 아이를 바라본다 세월이 비워놓은 고요한 행간 속에서 적당히 떨어져야 함께 젖어드는 삶, 나무가 견뎌온 생략이란 그런 것이다 세월을 이겨낸 생각들만 서둘러 몸을 간추려 떠난다 흘러가서 마침내 무엇이 될 빗물에 젖어, * 편지 - 박찬호 나뭇잎들 훨훨 바람에 털리다, 마침내 저를 버려 먼 길 가벼운 下午, 오래된 편지를 읽는다 낡은 세상의 몸을 버리고 얼굴의 세월자국 닦지 않아도 흰 꽃, 單色의 안부로 동봉한 당신의 편지, 오래 불려진 이름은 쉽게 닳아 색 흐린 주소로 늙었지만 조금씩 상처난 글자들이 우르르 깊은 체온으로 덮여 아직도 읽지 못한 그대의 살 이, 놋대야 같은 가슴의 振幅이 되는 * 별을 보다 - 박찬호 다만 잔별에 취해 비틀거렸다 그대를 위해 몸 만들던 낡은 내 육질의 문장들이 턱없이 요절하던 처마 위, 한때 내게서 빛나던 희망의 언어들은 이제 생의 가장자리에서 짙푸르고 겨울에 사면되는 꽃들의 이름만 따뜻한 저음의 행렬로 돌아왔다 별빛, 누군가 멀리서 오래동안 되돌아가는 표정, 환했다 * 빨래.4 - 박찬호 -황태 덕장 며칠에 한 번 소금의 이름들이 부려지는 들판 빛나는 것은 벗은 살 뿐이다 저마다 지녀온 오랜 체구를 물 비린 내력도 비운 채, 다만 한결같이 널린다 한때 바다에서 번창하던 푸른 꿈들이 먼 풍경으로 흔들리다 다시 風聞이 되는 계절, 바라보는 눈길이 자주 희미해졌지만 맨살에 새겨진 상처만으로 지나온 시절을 요약할 수는 없었다 오늘 떠나지 못한 구름만 눈길을 좇아 흐르던 들판, 널리는 것은 육체가 아니고 꿈이 아니고 허름한 과거의 시간 뿐 추억의 각질을 벗고 마른 살로 널려야 사물이 되는 육질의 빗살무늬들, 한때 삶이란, 가벼워야 희망으로 부패한다고 생각했으나 죽음마저 꿈으로 소진해 버린 삶들이야 잠시 바라보는 눈빛으로도 털려 털릴수록 무거워진다 묵은 세월이 내 안에 널어놓은 생각들 벗은 살 위에 올려놓는다 묵직한 어휘들이 떨어진다 아직 햇빛은 들식은 몸의 추억을 쪼개어 들숨 한 번에 적당한 크기로 들판에 늘어놓고 털리고 털려 사물에 도달한 젖은 이름들로 빈 들은 가득해진다 해 지는 마을에서 들려오던 무슨 소리 같은 것들, * 맥주는 맥주다 - 박찬호 A와 J와 K와 또 다른 K, 그리고 내가 모여 거품 없는 맥주를 마시면 자주 도망을 치고 싶어진다 분뇨로 배양되지 못한 허름한 내 삶의 거품들, 곧추선 발로 일어나 우리들이 소멸하는 下午의 시간, 내가 선 자리를 비우고 받아쓰기하듯 천천히 갈증을 복창한다 거품으로 알려진 것들의 잠적, 또는 사라짐 거품이 거품으로 불릴 때의 익숙한 약속 거품이 거품으로 불리지 않는 낯선 발성 속에서, 삶이라는 권태를 모르고 곧 액화되는 거품의 몸짓, 견뎌본 적 있던가 그렇듯 짧은 없음 앞에 소통되지 않는 내 앎의 철자들 적셔본 적 있던가 못 찾겠다 꾀꼴꾀꼴 꾀꼬리, 노래 불러다오 초췌한 공복의 액체들아 내가 비워진 자리에 그대 낡은 이름을 새겨 없음의 나, 혹은 부재중인 나를 호명해 다오 이미 기성화 된 철자의 거품들로 가득 찬 내 삶의 적막을 개명해 다오 그래도 맥주는 맥주다. * 새벽을 기다리는 法 - 박찬호 -꽃이 말발한 화분은 마지막에 팔리고 알만한 시간들이 엎질러진 창틀 옆 낡은 음악가의 액자를 테이프로 붙인다 시계의 초침이 곤두박질친다 어둠의 표정이 희미해졌다 견고한 슬픔들은 모두 정든 구멍 안에서 일용할 하루를 위해 내요을 줄이고 마지막 불빛이 건너와 해진 몸을 접는 생의 가장자리, 아직 길 위에 있는 사내의 발등 위에 흐트러지던 단절음들 푸른 발성이 해 뜨기 전에 더욱 궁핍한 희망을 길어온다 누가 실바람으로 흐리게 몸 벗은 나무를 떠나며 안녕하신가, 남기던 투명한 인사 밤새 길 밖에 서성이던 꽃들의 의혹 저 햇살, * 불빛의 흔적 - 박찬호 반듯하지 않은 것들은 불빛으로 길을 낸다 어둠을 간추린 가로등만 자기 몸을 지켜 새벽을 속단한 희망으로 한두 개의 그늘을 길에 걸 때, 막차의 불빛으로 실려온 사람들 빛살에 분산된 어둠을 모아 살을 덮는다 이미 한 사람의 위안으로 버려진 꽃잎, 정면을 갖춘 채 다시 꿈을 꾸었다 생소한 흉터를 지운 그늘의 입구, 단 한 번 꽃으로 피었던 흔적 파릇했다 * 단일 주제에 의한 변주곡. in D minor - 박찬호 Ⅰ.알레망트 비가 올 것이다. 마침내 꽃잎이 간단하게 떨려 살금 열린 꽃잎 사이로 내가 들어가 사라질 것이다 세상의 옆구리가 뚫려 저무는 오후 귀퉁이가 닳은 슬픔 하나에도 당당해야겠다고 산 者들의 언어로 이야기할 것이다 Ⅱ.쿠란테 여름을 지나온 풀잎들이 젖은 몸으로 스러진다 마주볼 체온 없는 오후의 찻잔 위, 아침마다 유실하던 슬픔의 무게는 깊은 곳으로 遊泳하고, 상하고 젖은 날의 얼룩은 철자가 망가진 언어들로 내 몸을 기록했다 Ⅲ.사라방드 바흐는 이제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아, 장거리에서 전해오는 네 음성이 늙은 나무의 수액처럼 피곤했다 시간들이 낡은 물기를 털고 무지개빛 환영으로 행군을 했다 Ⅳ.지그 꽃들의 여린 살이 닫히고 사랑의 첫 언어를 준비하던 사람들이 종적처럼 떠났다. 마지막 빗물 하나가 아무 의미없이 떨어졌고 꽃줄기 끝에 매달린 깨끗한 웃음 하나가 조심스레 나풀거리며 저 홀로 깊어가는 계절의 오후를 과거형으로 머물게 했다. Ⅴ.샤콘느 낡은 형광등 불빛에 비치는 홀로된 날들의 빗물들은 낮은 몸짓으로만 강이 되어 흐르고, 갑자기, 살아 있는 날들의 아픔과 단순하게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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